
요즘과 같이 매서운 추위에 조심해야 할 대표적인 질환 중 하나가 대상포진(Herpes Zoster)이다.
대상포진은 몸의 한쪽 피부에 '띠 모양으로 포진'이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대상포진은 어릴 때 걸렸던 수두의 원인균인 수두 바이러스가 완전히 죽지 않고 척수나 뇌신경절에 숨죽이고 있다가 몸의 면역력이 떨어지면 활동을 시작해 해당 신경을 따라 피부 발진과 통증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대상포진으로 진료받은 환자는 한 해 70만명에 달할 만큼 흔한 질환으로 최근 가파르게 증가해 정상인 3~5명 중 1명꼴로 일생에 한 번은 걸린다.
과거에는 50세 이상에서 암이나 큰 수술을 받은 노약자가 잘 걸리는 질환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2024년 발표된 스웨덴의 보고 자료에 따르면 환자의 70%는 건강한 상태에서 발병했으며 30·40대는 물론이고 10·20대의 젊은 수험생들도 대상포진 위협에 노출되고 있다.

젊은 층은 매일 스트레스 상황에 직면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는 결국 스트레스 호르몬(스테로이드호르몬, 아드레날린, 성장호르몬 등)과 혈장 사이토카인 등의 조절장애 및 NK세포 기능을 떨어뜨려 잠복한 바이러스의 활성화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T-임파구'와 같은 면역계는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활성화되지 못하도록 막아 대상포진을 억제하는 데 매우 중요하지만 요즘처럼 극한 추위와 그에 따른 스트레스 상황에서 수치가 하락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문동언 문동언마취통증의학과의원 대표 원장(가톨릭의대 마취통증의학과 명예교수)은 "취업과 학업 스트레스는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기 때문에 젊은 층도 대상포진에 걸릴 위험이 높다. 게다가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에는 면역력이 감소하므로 대상포진에 걸릴 위험성이 증가한다"면서 "일상에서 스트레스나 과로를 줄이고 균형 잡힌 식사와 운동을 병행하여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국제학술지 '브리티시 저널 오브 더마톨로지'에 2021년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덴마크에서 40세 이상 성인 7만7310명을 4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 평소 높은 수준의 심리적 스트레스를 느끼는 사람은 대상포진 발병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상포진은 통증과 수포가 신체의 한쪽으로만 신경을 따라 띠 모양으로 무리를 지어 나타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매우 드물게(약 0.5%) 멀리 떨어진 2곳 이상 신경분절에서 발병하거나 양측성으로 대상포진이 생기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암 환자나 면역이 결핍된 환자에서 주로 보고되고 있다. 즉 면역력이 낮아지면 항바이러스제 치료 중이라도 반대쪽에 새로 병변이 생길 수 있으며, 처음 발병한 부위와 같은 쪽의 멀리 떨어진 다른 신경에도 대상포진이 새로 발생할 수 있다.
큰 수술을 받았거나 당뇨, 암 등 면역이 감소한 사람 외에도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거나 과도한 업무나 여행으로 극도로 지치고 피로한 사람에게서 피부 발진이 나타나기 1~7일 전부터 통증을 동반한 가벼운 감기 증상(가려움, 저림, 피로, 이상감각, 두통, 미열 등)이 생긴다. 이런 전구증상은 대상포진 환자의 약 80%에서 일어난다. 문동언 원장은 "외상 등의 원인 없이 몸의 한쪽이 띠를 따라 쑤시고 가려우며 가벼운 감기 증상이 있다면 대상포진을 의심해 병원을 방문하는 것이 권장된다. 그 후 붉은 반점이 몸통과 얼굴 등 신체의 한쪽에만 띠 모양으로 나타나고 띠를 따라 화끈거리고 쑤신다. 초기의 붉은 반점을 벌레에 물린 것으로 자가 진단해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흔하므로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고 강조했다.

대상포진이 체성신경이 아니라 내장신경이나 자율신경에 침범하게 되면 피부에 발진이 나타나지 않아 진단이 어렵고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정확한 빈도는 아직 보고된 적이 없지만 정상인 3~5명 중 1명은 일생에 한 번 대상포진에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발진대상포진(zoster sine herpete)도 상당히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통증 부위에 발진이 없어 내부 장기의 병을 의심해 여러 진료과에서 검사만 하다가 바이러스 치료와 통증치료 시기를 놓쳐 '대상포진후신경통(postherpetic neuralgia)'으로 발전하고 우울증이나 불면증과 같은 정신질환까지 초래하며 수년에서 수십 년간 고통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특별한 원인 없이 과도한 업무나 스트레스로 체력이 고갈된 사람이 발진이 없더라도 신체의 한쪽 부위에 띠를 따라 통증이 있으면서 살짝 스치기만 해도 불쾌하면 대상포진의 가능성을 의심하고 전문의 진료를 받아야 한다.
무서운 대상포진후신경통
대상포진 통증은 발진이 없어지면 대부분 감소하지만 조기 치료가 되지 않으면 피부발진이 사라져도 10명 중 2명꼴로 통증이 남아있는 '대상포진후신경통'으로 발전해 고통을 겪을 수 있다. 치료 시기를 놓치면 바이러스가 신경에 염증을 만들고 신경세포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대상포진 초기부터 쑤시고 화끈거리며 찌릿찌릿한 통증 및 이상감각 등을 동반하는 신경병증통증(neuropathic pain)이 있다면 대상포진후신경통으로 발전하는 경향이 있다. 그 외 발진과 염증의 심한 정도, 고령, 면역결핍, 당뇨, 심폐질환 등 만성 질환을 동반한 환자도 대상포진후신경통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말초혈관질환자나 추운 겨울에 발병한 대상포진 환자도 말초신경에 혈류가 감소하고 신경 재생이 떨어지므로 난치성 대상포진후신경통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따라서 대상포진이 의심되면 발진 전부터 항바이러스제를 투여하는데, 그러지 못한 경우 발진 후 72시간 이내 투여해야만 신경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항바이러스제 외 진통제와 항경련제 등도 적극 투여해야 한다. 또한 초음파를 보면서 해당 신경을 찾아 국소마취제로 신경주사 치료도 병행해야 한다. 왜냐하면 바이러스 자체가 신경 손상을 초래하지만 통증 자체도 신경세포를 파괴시키기 때문이다. 문동언 원장은 "항경련제와 주사치료는 항바이러스제처럼 신경 손상을 예방해 대상포진후신경통의 발병률을 감소시킬 수 있다. 즉 항바이러스제 투여와 통증치료를 동시에 가능한 한 빨리하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대상포진이 가장 흔히 발생하는 부위는 흉부신경의 신경지배 부위인 등과 가슴인데 전체 환자의 50~70%가 이에 해당한다. 그다음은 안면부(15%), 목, 허리, 둔부 순으로 발병하며 신체 어느 곳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 10년간 재발률은 평균 10%지만 25%까지 보고되고 있으며 재발 환자의 50%는 지난번 발생 부위와 같은 부위에 나타난다.
특히 면역이 결핍된 환자, 여성, 가족력, 만성질환자(당뇨, 신장질환, 만성폐질환, 심장질환, 우울증, 류머티즘 등), 대상포진후신경통이 심했던 환자, 눈 주위 대상포진 발생 환자는 재발 위험성이 높으므로 반드시 예방접종을 해야 한다.
치료 시기 놓치면 부작용 심각
치료 시기를 놓칠 경우 대상포진후신경통 외에도 심각한 후유증이 나타난다. 눈에 침범한 안구대상포진은 각막염, 녹내장, 시신경염 및 시력손실(6~10%)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안과 치료도 받아야 한다. 환자의 대처에 따른 명암이 엇갈린 사례를 소개한다.
80대 A할머니는 대상포진 생백신 접종을 한 후 눈 부위의 이마쪽에 엷은 발진이 생겨 대학병원에서 대상포진 진단을 받고 항바이러스제 처방을 받았지만 2~3일만 복용하고 방치해 결국 한쪽 눈을 거의 실명했다. 60대 가정주부 B씨는 눈이 붓고 코 안쪽(비강)에 불이 난 것처럼 후끈거리는 증상이 발생했다. 코를 누르면 덜 아팠지만 이후 통증이 귀로 퍼졌다. B씨는 이비인후과를 찾아 진료와 함께 일주일치 일반 약처방을 받았다. 하루 동안 약을 먹어도 차도는 없고 통증이 계속되자 B씨는 마취통증의학과를 찾아 항바이러스제를 처방받아 일주일간 복용한 뒤 '끔찍한 통증'에서 벗어났다.
대상포진은 안면신경과 청신경에까지 침범해 안면마비와 귀 통증을 일으키는 람세이헌트증후군(Ramsay Hunt Syndrome)을 일으키기도 한다. 한쪽 얼굴과 귀에 통증 및 발진이 생기면 쉽게 진단이 되지만 발진이 없는 대상포진의 경우 치료 시기를 놓쳐 회복이 불가능한 안면마비와 청력 감소까지 초래하므로 빠른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
천추(엉치) 부위에 침범하면 소변 저류와 방광 팽창을 일으키고, 5%의 환자에게서는 운동신경 마비도 보인다. 복부 근육이나 하지근육으로 가는 신경에 침범하면 한쪽 배만 불룩 나오거나 복부팽만을 초래하고 다리에 힘이 빠질 수 있다. 매우 드물지만 바이러스가 신경계와 내장계에 침범해 척수염, 뇌수막염, 심내막염 등을 초래하여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대상포진에 걸리지 않으려면 면역을 증가시키고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상포진 백신을 맞아야 한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사용 중인 약독화한 생백신은 예방 효과가 51~70%이며 50대 이상에게 추천된다. 그러나 백혈병과 혈액암 등으로 면역이 결핍된 환자, 고용량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는 환자와 임산부는 사용이 금지되어 왔다. 다만 최근 수입된 사백신은 18세 이상 그리고 면역억제 환자도 사용이 가능하다. 예방 효과는 70~97%로 생백신보다 높지만 2회 접종을 해야 하고 가격이 비싼 단점이 있다.